Sunday, November 1, 2009

Review [KOTRA가 풀어주는 중남미 비즈니스 문화코드]


[KOTRA가 풀어주는 중남미 비즈니스 문화코드]을 읽으며…

영어와 인터넷이 선택이 아닌 필수로 되어버린 우리 대한민국의 삶에 익숙해진 이에겐 약간의 문화충격(Culture shock) 예상되는 국가들이 바로 중남미 국가들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중남미에 직접 갔을 경우 피부로 와 닿는 불편함이 예상되는데, 그 첫번째가 언어일 것이다.물론 그 나라말로 바로 통역을 하는 것이 최선이겠지만, 이민족과의 의사소통을 위해 간혹 제3언어를 사용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 경험에 비추어 보건데, 그 언어가 영어가 아닌 스페인어라는 점에서 우리 나라 사람들에겐 적지 않은 스트레스로 다가 올 것이라는 생각이든다. 물론 요즘엔 제2외국어 교육을 많이 실시하여 영어 외의 다른 언어를 배우는 학생들이 늘고 있어 다행이긴 하지만, 그래도 우리 나라에선 영어가 대세이고 그 중에서도 미국영어가 주를 이루고 있는 것을 보아 아직도 우리나라의 미국 의존도가 높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을 것 같다. 이런 의미에서 중남미 시장은 미개척 분야로 그 가치가 높이 평가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두번째로 예상되는 불편함은 인터넷 환경의 미흡함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현 우리 사회에선 길거리에 PC방이 널려 있음은 물론이고, 심심치 않게 공짜로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는 공간도 있으며, 최근에는 전화기로도 인터넷에 접속하여 정보 검색 및 이메일(e-mail)을 확인하는 사용자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이런 문명의 혜택을 아주 당연한 것으로 여기면 누리는 우리에겐 중남미의 열악한 인터넷 환경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상태일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인터넷이 느리다”는 수준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인터넷 환경이 최악인 상태이니 만큼 당연히 인터넷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적을 것이고, 이것은 커뮤니케이션 (communication)의 문제로 연결 될 것이다. 상기 언급한 커뮤니케이션 언어의 문제에다가 커뮤니케이션 통로(방법)에도 문제가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비즈니스 (business: busy +ness) 는 바쁜 것 뿐만이 아니라, 속도도 중요한 요소인데 이메일 만큼 일처리 속도를 높여 줄 수 있는 통신수단이 또 있을까? 그런데 이 통신 수단이 무용지물이라니 난관이 아닐 수 없다.

문화적인 면을 엿볼 때, 중남미의 여러 나라들이 모두 더운 지방이어서 그런지 시간개념에 있어서 상당히 관대하다는 공통점이 발견되었다. 약속시간이 무의미한 것은 물론이고 언제든 쉽게 취소가 될 수 있는 것들이 그 예로 보인다.

특이한 문화적 특징으로 기억에 남는 것은 학위를 호칭으로 선호하는 그들의 성향이다. 생각해 보니 이것도 그들의 자존심과 연관이 있어 보인다. 중남미의 여러 나라들에서 그들의 자존심이 상당히 강하게 들어 남을 보게 된다. 그들이 자존심을 유독 내세우는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나의 편견이겠지만, 중남미하면 개발도상국으로 아직 선진국의 수준을 따라가기에는 아직도 갈 길이 멀어 보이는 나라들이다. 그리고 사회적 부정부패 수준도 높아 보인다. 쉽게 말해서 못사는 나라라는 말이다. 내가 그런 못사는 나라들에서 자존심을 강조하는 이유를 나름대로 이해하는데 도움을 줬던 책이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쓴 [신화는 없다]에서 [음식 얻어먹으면 혼날 줄 알아]라는 소제목의 글에서, 힘없고 가난한 이들의 자존심에 대해 이해하는데 필요한 약간의 인사이트 (insight)를 얻었기 때문이다. 가난했던 어린 이 대통령에게 자존심이 소중했던 것처럼 그들에게도 자존심이 소중하리라고 나름대로 생각해 본다.

마지막으로 이 책을 읽다가 평소에 생각하지 못했던 점에서 개인적인 도전을 받은 부분이 있어 소개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문서화”가 일을 추진하는데 중요한 도구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 책에선 불신사회여서 증거의 효력이 있는 문서화된 계약을 선호한다는 말이 내게는 도전이 되었다. 내가 문서화를 선호하는 것이 단순히 일의 추진력 때문만이 아닐지도 모른다 의문이 들어서이다. 나에게도 사회에 대해 또는 다른 사람들에 대해 불신이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 아닐찌 모르기 때문이다. 서로 신뢰하면 의존하는 밝은 사회를 꿈꾸면서 동시에 불신이 꽉차있는 모순된 내 자아를 발견했던 부분이었다. 끝.


글: Woody WOO
글자수: 484단어
글쓴날짜: 2009년 11월 01일 일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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